2013년 4월 어느 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출근을 위해 샤워를 하던 중이었다. 왼쪽 가슴 위로 경험하지 못했던 통증이 시작되면서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서둘러 몸을 닦고 옷을 챙겨 입던 중 정신을 잃으면서 쓰러져 버렸다. 바로 정신이 돌아와 침대에 누웠지만 통증은 계속되었고, 시야는 흐린 채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놀라서 뛰어 온 아내는 내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다며 바로 119에 연락을 했다.
구급차에 실려 가까운 일산 백병원 응급실로 들어갔고,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거짓말처럼 증상이 사라져버렸다. 검사 결과도 특이한 사항이 없어 두어 시간 누워 있다 퇴원했다. 원인을 알고 싶어 이런저런 진료를 받아 보았지만 딱히 원인을 찾지 못했다.
통증은 수시로 찾아왔다. 일본 출장 중에도 통증이 찾아왔고, 한시간 정도 끙끙 앓고 나면 말끔히 사라지곤 했다. 집에서 겪는 통증은 유독 심해서 119 엠뷸런스로 응급실을 찾은 적도 있다. 의사 친구의 권유에 따라 겨울에 강남 세브란스 심장내과에서 심장 조영술을 하게 되었다. 변이형 협심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딱히 원인은 없었다. 혈관도 문제가 없었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정상이었다. 담당의사의 진단 역시 스트레스 말고는 물리적인 원인은 없단다.
해가 지나면서 통증의 빈도는 조금씩 잦아졌고, 그 때마다 니트로 글리세린으로 넘어가곤 했다. 2016년 말 회사의 배려로 서초동 사무실 근처 오피스텔을 얻었다. 파주에서 서초동까지 출퇴근하면서 쌓인 피로가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느긋하게 일어나 걸어서 출근하니 조금은 나아진 듯도 싶었다.
이 회사는 시스템과 마케팅을 책임지는 임원으로 2004년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시스템과 마케팅을 겸한다는 것이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온라인으로만 사업을 하는 회사에서 시스템과 마케팅은 떨어뜨릴 수 없다는 것이 대표의 생각이었고,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10여 년간 천리안과 벤처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살아왔던 내 경력과는 딱 맞는 일이었다. 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안정적인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최고의 마케팅이라는 것. 게다가 키워드 광고가 가장 핵심적인 마케팅 수단인 상황에서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고 마케팅 포인트를 찾는 것 역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많은 일을 했다. 주먹구구로 이루어지던 생산과 포장 과정을 전산화하여 인력은 반으로 줄이면서 생산량은 몇 배로 확대시켰다. 클라우드 서비스로 시스템을 이전하여 이벤트마다 겪어야 했던 고질적인 용량 문제도 해결했다. 신상품도 개발하여 새로운 수익기반도 창출하고, 일본으로 진출하여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2015년 정도까지 10여 년 동안 한 일이다.
걸어서 출퇴근하면서 몸은 많이 편해졌다. 몸이 편해졌다고 마음까지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 쪽에는 현지 책임자를 뽑아 일을 맡기면서 출장갈 일이 없어졌고, 국내에서도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없었다. 매출은 답보상태였고, 유지보수 업무만 쌓여가고 있었다. 아주 작은 중소기업에서 훌륭한 인력을 충원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사람으로 인해 쌓여가는 스트레스는 견디기 힘들었다.
오피스텔에서도 몇 번의 통증이 있었고, 니트로 글리세린으로 넘기기도 했지만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몇 번. 결국 1년 후 2017년 말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회사의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더 이상 내가 있을 필요가 있을까 회의가 들었다. 어지간히 중요한 부분은 이미 다 다듬어 놓았고, 남은 것은 인력을 관리하는 일 뿐인데, 사람을 다루는 일은 나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테고. 고민을 하기 시작하던 중 출근길 운전 중에 통증이 밀려오는 상황이 발생했다. 급하게 길 옆으로 차를 세우고 니트로 글리세린을 입속에 털어 넣고는 출근했다.
한 달 동안 이런 상황을 세 번을 겪고 나니, ‘이러다 길 위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겁이 덜컥 났다. 무조건 쉬고 싶었다. 결국 사직서를 냈다. 2018년 3월 말이었다. 대책 같은 건 없었다. 뭐 어떻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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