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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이야기

대한민국 주세법 상 청주는 일본술이다?

조선의 니혼슈(朝鮮の日本酒), 일본판 위키백과사전의 항목명이다. 우선 개요를 살펴보자. 

 

朝鮮の日本酒(ちょうせんのにほんしゅ)では、朝鮮半島における日本酒および清酒について述べる。日本国外では最古となる19世紀末に始まった朝鮮半島での日本酒生産は21世紀まで途切れることなく続き、日本から輸出も行われている。

 

번역해 보면 이렇다.

 

조선의 니혼슈에서는, 조선반도와 니혼슈 즉 청주에 관해 기술한다. 19세기 말 조선반도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니혼슈는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21세기까지 생산이 지속되고 있으며, 일본에서의 수출도 이루어지고 있다. 

 

본문을 살펴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니혼슈는 대한민국에서는 주세법 상의 13종류 술 가운데 [청주]에 해당하며, (日本酒は大韓民国では税法上の13種類の酒区分の中で「清酒」(청주, チョンジュ)にあたり,)

 

기분 나쁘고 안타깝긴 하지만 이상의 내용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주세법에 따르면 누룩을 1% 미만으로 사용해야 청주가 된다. 누룩 없이 곰팡이와 효모를 분리하여 사용하는 양조방법은 일본에서 대규모 양조산업이 발달하면서 개발된 방법이다. 

 

전통적인 우리 술을 만들 때에는 반드시 누룩을 사용해야 한다. 아무리 적게 사용한다고 해도 5% 이상은 들어가야 술이 된다. 집집마다 메주를 띄워 장을 담그듯, 누룩을 띄워 술을 담갔으니 대규모 산업으로 양조산업이 발달할 이유도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공식적인 진상품이나 하사품의 목록에는 거의 대부분 '청주'라고 적혀 있다. '약주'라는 단어는 임금이 대신들과 술을 한 잔 했다는 의미로만 사용된다. 청주는 108회 등장하고 약주는 52회 등장한다. 

 

조상에게 제사 지낼 때 읽는 축문에는 '근이청작서수공신전헌상향(謹以淸酌庶羞恭伸奠獻尙饗)'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맑은술과 음식을 경건한 마음으로 바치오니 즐겁게 드시옵소서' 정도의 의미이다.

 

일본판 위키백과, 대한민국 주세법, 조선왕조실록, 축문을 종합해보면 조선의 임금님들은 일본술을 구해서 백성들에게 하사했고, 제사 지낼 때 역시 일본술을 떠다 바쳤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이런 엉터리는 대한민국 주세법 상 '청주'에 대한 정의에서 비롯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이어가야 하는 걸까? 국세청이 전체 주세에서 겨우 1%를 조금 넘는 두 가지 술에 대해(약주 0.47%, 청주 0.85%)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이런 상황에서 굳이 둘을 구분할 이유도 없는 것 아닐까? 

 

일제의 잔재들은 이제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주세법 귀퉁이에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