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어 있던 여덟 자리를 꽉 채워 문발리 우리술연구소를 찾아 주셨습니다. 연구소의 첫 행사였던지라 긴장도 하고, 준비도 소홀한 점이 있었음에도 다들 즐겁게 우리 술과 증류주 이야기를 즐겨 주셔서 행복했습니다.
증류주는 일단 발효된 술을 다시 한 번 증류하여 만든 술입니다. 인류는 몇 천 년 동안 술을 빚어 왔지만 증류주의 역사는 고작 몇 백 년입니다. 만들기도 까다롭고 생산량도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귀족이나 상류층만 즐길 수 있었던 술입니다.
신례명주와 추사40을 마시면서 과실주로 만든 증류주의 깔끔함에 놀랐고, 고소리술과 미르54를 마시면서 정통 소주가 갖는 무게와 풍미에 놀랐습니다. 다들 술 좀 마신다는 분들이었지만 이 술들은 처음이며, 양주와 견주어도 모자랄 것 없는 술이라며 즐거워했습니다.
신례명주와 추사40은 각각 제주의 감귤과 예산의 사과로 와인을 빚은 후 증류한 브랜디의 일종입니다. 도수는 40도로 고도주(높은 도수의 술)에 속합니다만 감미로운 과일향과 적당히 숙성된 오크향 때문에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탁주에 과일을 넣어 빚은 복분자주 류의 술과는 전혀 다른 개운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소리술은 제주에서 좁쌀로 빚은 오메기술을 증류하여 만듭니다. 우리 조상이 증류주를 만들 때 사용하던 소주고리를 제주도에선 고소리라고 불렀고, 고소리로 증류한 술이라 고소리술이라고 부릅니다. 어제 시음한 술은 40도짜리 고소리술입니다.
미르54는 경기미로 빚은 소주입니다. 54도짜리 미르는 40도의 술과는 또 다른 펀치감이 느껴집니다. 소주가 갖는 풍부한 맛과 묵직한 향은 과실 증류주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어제 오신 분들의 선택은 역시나 제각각 달랐습니다. 저마다의 느낌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지요. 시음회 끝무렵, 흔히 마시는 초록병 소주를 꺼냈습니다. 21도라는 도수 차이도 있겠습니다만 입안에서 느껴지는 술의 맛이 정통 소주와는 너무나 다릅니다. 감미료의 한계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시음회가 끝나도록 초록병 소주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희석식 소주도 그 자체로는 좋은 술입니다. 이런 가격으로 마실 수 있는 이런 좋은 술은 전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문제는 소주라는 이름을 독차지하며 너무 오랜 기간 시장을 장악했던 탓에 소주라는 술의 원래 맛을 잃어버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이번 증류주 시음회에 오신 분들은 아마도 우리술에도 다양한 증류주가 있고, 제각기 훌륭한 맛과 멋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로이 알아가셨을 겁니다. 다른 술자리에서 혹시라도 이번에 마신 술을 만나게 되면 즐거이 이번 행사의 기억을 떠올려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주변의 이웃들에게 우리 술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우리술연구소의 보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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